
8월 25일 방송된 MBC ‘오늘을 버틴 노래-플레이리스트 109’ 6회에서는 윤석민과 송가인이 각각 선수 생활의 슬럼프와 8년 무명 시절을 돌아보며 자신을 버티게 한 노래를 공개했다.
구리 리틀야구장에서 다시 꺼낸 야구의 시작
먼저 3MC 이석훈, 이준, 딘딘은 윤석민과 함께 그가 야구를 처음 시작했던 구리 리틀야구장을 찾았다. 윤석민은 어린 야구 꿈나무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야구 시작 계기부터 선수 시절 이야기를 나눴고, 어린 선수들이 힘든 순간마다 듣는 저마다의 버팀송도 함께 수집했다.
야구 인생의 출발점으로 돌아간 윤석민은 국가대표 에이스로 불렸던 모습과는 다른 예능감도 보여줬다. 이준의 ‘캐치캐치’ 영상을 본 뒤 “나보다 더 내려놓은 사람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급기야 “윤석민, 너 아직 못 내려놨네”라고 스스로를 돌아봤다고 밝혀 웃음을 안겼다.
직접 챌린지에 도전하기 위한 준비도 했다. 윤석민은 둘째 아들에게 춤을 배우고 거울을 보며 연습해 왔다고 밝혔고, 이준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몸을 사리지 않는 춤을 선보였다. 마운드에서 승부에 집중하던 모습과 달리 춤 앞에서는 끝까지 동작을 따라가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오른손 골절 뒤 코치에게 보낸 “야구를 그만두겠다”
이어 윤석민은 선수 생활 중 찾아온 가장 힘든 슬럼프를 돌아봤다. 그는 2010년 경기 패배 뒤 분을 참지 못하고 문을 주먹으로 쳤다가 오른손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오른손을 다친 상황에서 경기까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며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롯데전에 등판했을 때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위험한 사구가 반복되는 불운까지 겹치자 윤석민은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렸고, 결국 코치에게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지쳐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심각한 상태를 알아본 조범현 감독은 억지로 마운드에 세우지 않았다. 윤석민은 당시 조 감독이 “석민아 집에 가서 쉬다가 하고 싶으면 나온나”라고 말했다고 전했고, 그 말을 계기로 잠시 야구에서 떨어져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범현 감독의 선택으로 다시 잡은 국가대표 기회
휴식 뒤 다시 기회를 준 사람도 조범현 감독이었다. 윤석민은 자신이 2011년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배경에 2010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자신을 낙점한 조 감독의 선택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윤석민은 “진짜 보여줘야지 이러면서 아시안게임 때 진짜 잘했고 잘했죠”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슬럼프와 부상을 지나 대표팀에 다시 이름을 올린 뒤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컸고, 그 흐름은 다음 해 자신의 전성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정점과 달랐다. 끝내기 홈런을 맞은 뒤 윤석민은 “내가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털어놨다. 더 이상 프로야구 1군에서 버틸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한 그는 33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정했다.
은퇴 뒤 6개월, 야구장 함성이 더 힘들었던 이유
마운드를 떠난 뒤에도 마음은 바로 정리되지 않았다. 당시 윤석민이 살던 집에서는 야구장의 응원 소리가 들렸고, KIA 타이거즈가 득점할 때마다 팬들의 함성이 집까지 전해졌다. 선수일 때는 익숙했던 소리가 은퇴 뒤에는 오히려 자신이 더 이상 현장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윤석민은 “(야구 경기)현장에 있고 싶은 마음이 큰데 은퇴를 하니까 괴로웠다”며 약 6개월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경기를 보고 싶으면서도 직접 마운드에 설 수 없다는 현실이 겹치면서 은퇴 직후의 공백을 견디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기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반복해서 들었던 ‘버팀송’은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였다. 은퇴 무렵 “진짜 혼자 같았다”라고 느끼던 시기에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힘을 얻었고, 윤석민의 이야기를 들은 딘딘은 ‘혼자가 아닌 나’를 직접 부르며 그 시간을 노래로 이어갔다.
윤석민은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메시지도 전했다. “못했다 그래서 실망하지 말고, 자신 없다 그래서 슬퍼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라며 당장의 실패 때문에 멈추지 말라고 했다. 부상과 슬럼프, 국가대표 복귀와 전성기, 이른 은퇴까지 지나온 자신에게 실패도 결국 훗날 남는 경험이었다는 의미였다.
송가인과 이준이 즉석에서 만든 예고 간판 무대
이어 트로트 여제 송가인이 등장했다. 광주예고에서 국악을 전공한 송가인과 서울예고에서 무용을 전공한 이준은 ‘예고 간판’의 자존심을 건 즉석 컬래버를 펼쳤다. 준비된 음악이나 별도의 연습 없이 이준이 한국무용 춤사위를 펼치자 송가인은 곧바로 구음을 얹었다.
두 사람은 각자 배웠던 전공을 살려 즉석에서 한 편의 무대를 완성했다. 송가인은 이준의 춤을 본 뒤 “춤선이 살아 있어”라고 평가했고, 서로 다른 국악과 무용이 바로 맞물리는 장면이 웃음과 감탄을 함께 만들었다.
무명 가수에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된 뒤 백화점 VIP가 된 이유도 공개됐다. 송가인은 성공한 뒤 무명 시절 자신에게 잘해줬던 선생님과 친구, 부모님의 지인, 가족들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백화점을 자주 찾았고, 매번 주변 사람들의 선물을 사다 보니 자연스럽게 VIP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 달 한두 번 무대, 비녀까지 만들었던 8년 무명
화려해진 현재와 달리 송가인의 무명 시절은 약 8년 동안 이어졌다. 당시 한 달에 행사가 한두 개 정도에 불과했고 언제 일이 들어올지 알 수 없어 고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매니저나 전용 차량이 없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무대 의상도 직접 구입해 리폼하며 활동했다고 털어놨다.
생활비가 빠듯했던 송가인은 국악을 했던 경험을 살려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동대문에서 재료를 구해 비녀와 뒤꽂이를 만들어 팔았고, ‘미스트롯’ 오디션 경연을 치르던 때까지도 이를 이어갔다고 밝혔다. 무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가수 활동과 생계를 동시에 버텨야 했던 시간이었다.
출연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부당한 대우도 겪었다. 어렵게 마련한 의상을 입고 녹화장에 갔다가 “또 똑같은 옷 입고 왔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남아 있었다. 송가인은 경제적인 어려움뿐 아니라 가수로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말까지 견뎌야 했다고 돌아봤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순간도 많았다. 송가인은 무명 시절 “얼굴과 몸매가 안 되니 노래로 승부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스스로 얼굴 없는 가수를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할 정도로 상처를 받았지만 마음속에는 “두고 봐라”라는 생각을 품고 활동을 이어갔다.
어머니 한마디로 나간 ‘미스트롯’, 첫 무대는 ‘한 많은 대동강’
전환점은 ‘미스트롯’이었다. 출연을 망설이던 송가인에게 어머니는 “나가라, 나가면 대박 난다”라고 말했고, 송가인은 그 말을 믿고 경연에 나섰다. 첫 무대에서 선택한 곡은 ‘한 많은 대동강’이었다.
첫 라운드에서 1등을 한 송가인은 당시 “나는 돈도 없고 백도 없고 기획사도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1등한 걸 보니 여긴 비리가 없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특유의 솔직한 입담으로 웃음을 안겼다. 이어 “내가 열심히만 하면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밝혔다.
오랜 무명 기간 동안 품었던 “두고 봐라”라는 마음은 결과를 얻은 뒤 다른 의미로 남았다. 송가인은 1등을 한 뒤에는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고,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한을 담아 노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한 많은 대동강’에서 버팀송 ‘서울의 달’까지
송가인의 이야기는 다시 노래로 이어졌다. 먼저 자신을 대중에게 알린 ‘미스트롯’ 첫 무대곡 ‘한 많은 대동강’을 열창했다. 첫 소절이 시작되자 3MC는 곧바로 노래에 빠져들었고 “진짜와 흉내는 다르다”라며 송가인의 가창력과 감정 표현에 감탄했다.
이어 송가인은 자신의 버팀송 ‘서울의 달’을 꺼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타향살이와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소개한 곡으로, 무명 시절을 지나온 송가인의 시간과도 맞닿아 있었다.
‘한 많은 대동강’에 이어 ‘서울의 달’까지 라이브가 계속되자 녹화 현장에서는 “그래미도 기절시킬 무대”, “그냥 코첼라 가셔야 돼”, “비욘세보다 노래 잘한다”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딘딘은 어떤 어려운 곡을 써도 송가인이 해낼 것 같다는 취지로 감탄했고, 송가인도 곡을 써달라고 화답했다.
방송 이후에도 관심은 이어졌다. 송가인이 자신의 버팀송으로 소개하고 직접 열창한 ‘서울의 달’은 방송 직후 멜론 인기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윤석민의 ‘혼자가 아닌 나’와 송가인의 ‘한 많은 대동강’, ‘서울의 달’은 각자가 버텨온 시간을 말로만 설명하는 대신 노래로 다시 들려준 장면이 됐다.
한 사람은 33세에 마운드를 떠난 뒤 혼자라고 느꼈던 시간을 ‘혼자가 아닌 나’로 되짚었고, 다른 한 사람은 8년 무명과 인생 역전의 시간을 ‘한 많은 대동강’과 ‘서울의 달’로 풀어냈다. 이미 방송된 세 곡 가운데 두 사람의 지난 시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버팀송은 무엇이었을까?
사진 : M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