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7일에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38회 ‘그림자 도시 – 1971 광주대단지 사건’ 편에서는 광주대단지 주민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당시 퍼진 인육 괴담의 실체가 공개된다.
꿈의 신도시에서 거리로 나온 주민들

1971년 8월 10일, 분노한 수만 명의 주민들이 거리로 나선다. 각목을 든 사람들이 버스를 점거하고, 건물과 차량은 불길에 휩싸인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저렴한 집터와 각종 생활시설, 일자리까지 들어설 거라던 꿈의 신도시. 집도 일자리도 절실했던 이들에게는 새 삶을 시작할 절호의 기회였다.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은 바로 경기도 ‘광주대단지’. 과연,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선 이주 후 개발’이 만든 광주대단지

박정희 정권 시대, 불도저라는 별명만큼 서울시 재개발을 위해 직진했던 김현옥 시장이 추진했던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서울 곳곳의 판자촌을 허물고, 주민들을 ‘광주대단지’로 이주시킨 사업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선 이주 후 개발이었던 것. 병원과 교통 등 기본 인프라는커녕 수도와 전기조차 없는 허허벌판에 도착한 시민들은 일할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곳에서 병마와 싸워야 했고, 어느 순간 끔찍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산모가 배가 고픈 나머지 자신이 낳은 아기를 삶아 먹었다더라”는 인육 괴담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간 것이다.
남규리가 떠올린 주거약자 시절

이야기를 듣던 남규리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라고 크게 공감하며 자신도 한때 주거약자였음을 고백한다. 남규리는 “나도 옥탑방에 살았었고, 반지하에도 살았었고, 고시원에서도 지냈었다”라며 “폭우가 오면 옥탑방은 물이 내려가질 않았다. 집에 오면 다 둥둥 떠 있을 정도로 열악했다”라며 힘겨웠던 시절을 회상한다.
남규리가 자신의 옥탑방과 반지하 생활을 떠올릴 만큼 주거 현실이 이야기의 현재적 접점이 된 가운데, 성남시는 오늘날 이 역사를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으로 부르고 있다. 꿈의 신도시라는 약속 뒤에 감춰졌던 주민들의 현실과 인육 괴담의 실체는 어디까지 드러날까?

광주대단지 주민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인육 괴담의 실체는 8월 27일 목요일 오후 10시 20분에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38회 ‘그림자 도시 – 1971 광주대단지 사건’ 편에서 공개된다.
사진 : S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