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초에 한 개씩 팔린다는 크림빵으로 연 매출 1400억 원을 일군 김영식의 출발점에는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14세 소년공의 시간이 있다. 편의점 오픈런을 만든 제빵업계의 성공 뒤에 공무원과 중동 건설 근로자를 거쳐 40대 후반에 빵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굴곡진 인생이 이어진다. 그 성공의 규모만큼 그가 지나온 삶의 낙차도 크다.
1초에 한 개씩 팔린 크림빵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는 ‘1초에 한 개씩 팔린 크림빵의 아빠’ 김영식의 성공 비결과 그 이면에 자리한 과거사를 조명한다. 김영식은 MZ세대가 즐겨 찾는 편의점 크림빵을 탄생시킨 주인공으로, 2025년 기준 약 1400억 원의 연 매출을 기록했다. 오랜 세월 여러 일을 거쳐 제빵업계에 들어온 뒤 대규모 생산 현장을 이끄는 사업가가 된 현재의 모습이 먼저 펼쳐진다.
대표 크림빵은 ‘빵보다 크림이 더 많다’는 말이 나올 만큼 속을 풍성하게 채운 제품으로 주목받았다. 빵을 반으로 갈라 가득 찬 크림을 사진으로 남기는 이른바 ‘반갈샷’이 SNS를 달구면서 인기가 더 커졌고, 원하는 제품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오픈런’까지 등장했다. 한 제품의 특징이 온라인 인증 문화와 맞물리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낸 셈이다.
쏟아지는 주문을 맞추기 위한 생산 규모도 크다. 김영식은 하루 생산량이 30만 개에 이르며 “쏟아지는 주문량에 2500평과 2000평 규모의 공장 두 곳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밝힌다. 크림빵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햄버거와 마카롱 등을 포함해 생산 품목이 약 150가지에 이르고, 편의점부터 기내식과 대형 마트, 군부대, 유명 카페까지 다양한 곳에 빵을 공급한다.
수돗물로 배 채운 14세 소년공
화려한 성공과 달리 김영식의 어린 시절은 배고픔과 맞닿아 있었다. 달동네에서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마음껏 배불리 먹는 것”을 소원으로 꼽을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날에는 수돗물로 허기를 달랬고, 청소를 하던 중 바닥에 떨어진 빵 조각을 발견하면 먼지를 털어내 먹었다. 그 먼지 묻은 조각이 김영식이 태어나 처음 맛본 빵이었다.
가난은 학교에 계속 다닐 기회까지 막았다. 돈을 벌어야 했던 김영식은 14살에 소년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첫 월급으로 3000원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처음 손에 쥔 돈이었지만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들을 생각해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월급 전부를 어머니에게 건넸다.
가로등 아래서 이룬 공무원 합격
소년공으로 일하던 김영식은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으면서 공무원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단칸방 생활에서 조용히 책을 펼칠 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던 그는 마을 우물가 옆 가로등을 공부방처럼 이용했다. 밤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공부를 이어간 끝에 마침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며 스스로 길을 열었다.
힘겹게 얻은 공무원 자리는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안정된 생활과 가까워지는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영식의 공무원 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그는 어렵게 합격한 자리를 자신의 선택으로 내려놓게 된다. 가로등 아래에서 공부해 얻은 직업을 두고 다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던 이유는 그의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공개된다. 방송은 그가 왜 어렵게 얻은 안정적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았는지 그 사연을 다음 인생 단계와 연결해 풀어낸다.
사하라 사막에서 버틴 6년
공무원을 떠난 뒤 김영식의 다음 행선지는 당시 중동 건설 붐이 이어지던 열사의 땅이었다.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던 날을 묻는 장예원에게 그는 “그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비행기 안에 마지막 인사와 ‘고향의 봄’이 울려 퍼지자 함께 떠나던 200여 명의 근로자들이 눈물을 쏟았다는 기억도 꺼내놓는다. 이야기를 듣던 서장훈 역시 “눈물 나오죠…”라며 숙연해진다.
현지의 생활은 말 그대로 극한의 더위와 맞서는 시간이었다. 김영식은 “버스를 타면 손잡이가 휘어지고, 자동차 보닛에 날달걀을 깨뜨리면 후라이가 될 정도였다”며 당시 사하라 사막의 열기를 설명한다. 낯선 땅에서 견뎌야 했던 환경은 혹독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6년을 버텼고, 국내에서 쉽게 모으기 어려운 큰돈을 손에 쥔 뒤 귀국했다.
하지만 6년 동안 모은 월급이 그대로 새로운 출발의 밑천이 된 것은 아니었다. 힘든 시간을 견뎌 마련한 돈이 어디로 갔는지를 둘러싼 김영식의 고백이 또 한 번 예상 밖의 이야기를 꺼내고, 여러 굴곡을 지나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그의 삶은 다시 빵과 맞닿는다. 어린 시절 먼지를 털어 먹었던 첫 빵에서 출발한 기억이 수십 년 뒤 제빵 사업이라는 전혀 다른 자리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공무원과 해외 건설 근로자를 거친 뒤에도 곧바로 제빵업으로 향한 것은 아니었고, 여러 굴곡을 돌아 40대 후반에 빵 사업과 다시 만나게 된다.
배고픔 때문에 처음 빵을 맛본 소년이 하루 30만 개의 빵을 만드는 사업가가 되기까지 김영식에게는 한 번의 직선적인 성공보다 여러 차례의 선택과 버팀이 있었다. 6년 치 월급의 행방을 지나 그가 40대 후반 빵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김영식이 소년공과 공무원, 사하라 사막 건설 근로자를 지나 ‘빵만장자’에 이른 인생 이야기는 9월 9일 수요일 오후 9시 55분 EBS1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 공개된다.
사진 :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