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48회 임장섭, ‘1000억 수박’ 만든 품질 원칙


8월 12일에 방송된 EBS1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48회에서는 연 매출 최대 1000억 원 규모의 수박 유통업을 일군 임장섭이 40년 동안 지켜온 ‘고당도 수박’의 품질 원칙이 공개됐다. 하루 최대 4만 통을 출하하는 규모에서도 맛이 충분히 들기 전에는 수확하지 않고, 선별 단계에서도 일정한 당도 기준을 지켜온 과정이 중심에 놓였다.
하루 4만 통을 움직이는 ‘수박계 큰손’


임장섭이 다루는 수박은 900여 계약 농가, 약 60만 평의 재배지에서 생산된다. 한 해 그의 유통망을 거치는 물량은 약 2만 톤에 달하고, 수확된 수박은 5000평 규모 유통센터로 모여 선별과 포장을 거친 뒤 전국으로 출하된다. 수박철마다 막대한 물량이 한곳으로 들어오지만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단계에서는 당도와 외관을 일정하게 맞추는 과정이 따로 이어졌다.
현장에서는 자동 선별 장비가 수박의 당도를 측정했고, 상품으로 내보내는 기준 가운데 하나로 11브릭스가 소개됐다. 기계가 확인하는 수치와 별개로 임장섭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 감별법도 전했다. 껍질의 색이 충분히 짙고 두드렸을 때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는 수박을 잘 익은 수박으로 보는 방식이었다.
서장훈과 장예원은 곧바로 ‘최고의 꿀수박’을 찾는 대결에 나섰다. 장예원이 고른 수박은 색과 소리뿐 아니라 실제 맛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서장훈의 수박은 눈에 띄게 큰 배꼽 때문에 자르기 전부터 불리한 판정을 받았다. 서장훈이 “제 수박도 맛있다”고 버티자 임장섭은 “누가 뭐라 해도 예원 씨가 더 맛있는 수박을 고른 건 사실”이라고 선을 그어 승부를 끝냈다.
유통 현장의 속도도 남달랐다. 숙련된 작업자들은 큰 수박 28개를 28초 만에 옮기는 ‘1초 1수박’ 상차를 보여줬고, 농구선수 출신 서장훈도 “던지는 건 제가 전문”이라며 수박 패스에 도전했다. 그러나 빠르게 이어지는 작업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벌어지며, 익숙해 보이는 수박 한 통이 실제 유통 현장에서는 얼마나 숙련된 손길을 거치는지도 드러났다.
배추 2만 포기에서 시작된 장사 인생


임장섭의 출발은 지금의 대규모 유통센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운수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서울로 유학을 갈 만큼 넉넉한 10대를 보냈지만 집안 형편이 갑자기 기울면서 25세에 고향 부안으로 내려왔고, 장남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다 돌아와 시장에 선 자신을 두고 주변에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견뎌야 했다. 그래도 장사를 멈추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익히던 가운데 배추 2만 포기를 헐값에 살 기회를 잡았다. 당시 그는 포기당 20원에 배추를 매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파가 찾아오며 김장철 배춧값이 크게 뛰었다. 임장섭은 20원에 산 배추를 포기당 500원에서 700원에 팔아 1980년대 당시 약 1000만 원의 순수익을 거뒀고, 거래 한 번에서 약 30배의 마진을 경험했다. 우연히 찾아온 가격 상승을 실제 수익으로 연결하면서 자신에게 장사의 감각이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후 선배의 제안을 받아 경매사로 자리를 옮겼다. 판매자에게는 좋은 값을 받아주고 구매자에게는 거래가 성사될 가격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에서 특유의 배짱과 협상력을 보였고, 빠르게 인기 경매사로 자리 잡았다. 이야기를 듣던 서장훈은 “TV에서 보고 배웠다”며 경매사의 호흡과 말투를 흉내 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40~50일과 11브릭스가 만든 ‘고당도 수박’

잘나가던 경매사 생활을 뒤로한 임장섭은 1996년 직접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수박철이 되면 전국에서 물량이 모이기 시작했고, 업계에서는 “수박을 사려면 임장섭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1998년에는 대형마트 협력업체 사이에서 품질이 알려지면서 대기업 본사의 제안을 받아 공식 협력업체가 됐다.
대형 유통망이 요구한 것은 한 번 맛있는 수박이 아니라 언제 사도 당도 차이가 크지 않은 상품이었다. 임장섭은 열매가 맺힌 뒤 40일에서 50일 정도가 지나야 충분히 익는다는 기준을 두고 “그전까지는 절대 따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하 시기를 앞당겨 물량을 맞추기보다 맛이 드는 시간을 먼저 지키는 방식이었다.
센터에 들어온 수박은 선별 장비를 거치며 당도를 확인했고 11브릭스 수준의 기준도 적용됐다. 밭에서 수확 시기를 지키고 유통센터에서 다시 당도를 확인하는 두 단계가 맞물리면서, 대형마트가 요구하는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관리가 쌓이자 전국 마트 납품도 확대됐다.
결국 임장섭이 만든 경쟁력은 수박을 많이 확보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하루 최대 4만 통이 움직이는 규모에서도 맛의 기준을 낮추지 않는 것이 핵심이었고, 40년 동안 같은 원칙을 반복한 결과가 연 매출 최대 1000억 원의 유통 사업으로 이어졌다.
900여 농가와 지킨 ‘끝까지 책임’ 원칙



임장섭은 지금의 사업을 만든 가장 고마운 존재로 900여 생산 농가를 꼽았다. 농가는 품질 좋은 수박을 생산하고 임장섭은 계약한 농작물을 유통망에 연결하는 역할을 맡으며 오랜 거래를 이어왔다. 한쪽이 물건만 넘기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다음 농사까지 이어지는 계약 구조가 사업의 기반이 됐다.
농사를 시작하려면 씨앗과 모종, 시설, 인건비 등 수확 전에 먼저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임장섭은 “지금은 돈 없으면 절대 농업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며 농가의 초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의 선도금을 미리 지급한다고 밝혔다. 수확이 끝난 뒤 정산하는 것만이 아니라 재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먼저 자금을 내주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날씨다. 수박은 기상 조건에 따라 작황과 가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계약 당시 예상과 실제 수확 결과가 어긋날 때가 생긴다. 임장섭은 이런 상황에서 “10억 원, 20억 원의 손해를 볼 때도 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우리가 계약한 수박은 끝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
손해가 예상된다고 계약 물량을 외면하면 다음 해 농가와의 관계도 이어지기 어렵다. 임장섭은 농가가 생산한 수박을 책임지고, 농가는 그 약속을 믿고 품질을 지키는 방식으로 40년의 거래를 쌓았다. 화려한 매출 숫자 뒤에 있던 것은 한 번의 배추 대박보다 매년 같은 기준을 지켜온 품질 관리와 계약 농가와의 약속이었다.
농가와의 약속을 오래 지킨 방식은 결국 매년 일정한 품질의 수박을 확보하는 기반으로 이어졌다. 수확 시기와 당도 기준을 타협하지 않은 반복이 40년 동안 같은 품질을 지켜낸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사진 :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