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크림빵 신화 김영식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크림빵 신화 김영식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가 가난한 소년공에서 연 매출 1400억 원의 CEO로 거듭난 ‘크림빵 신화’ 김영식의 성공 비결을 조명했다. 자신의 성공을 직원과 이웃에게 돌려주며 ‘진정한 부(富)’의 가치를 실천하는 남다른 인생 철학이 깊은 울림을 전했다.

1초에 한 개씩 팔린 크림빵

9일 방송된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는 연 매출 1400억 원, ‘1초에 한 개씩 팔린 크림빵’을 만든 ‘빵만장자’ 김영식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공개됐다. 그가 만든 크림빵은 속을 가득 채운 ‘크림 폭탄’으로 MZ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장예원은 “이 빵을 반으로 갈라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반갈샷’이 SNS에서 유행이었다”며 당시의 인기를 떠올렸다. 제품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 ‘오픈런’까지 벌어졌고, 김영식의 회사는 2500평과 2000평 규모의 공장 두 곳을 가동하며 하루 약 30만 개의 빵을 생산하고 있다.

크림빵뿐 아니라 햄버거와 마카롱 등 생산 품목도 약 150종에 이른다. 완성된 제품은 편의점과 대형마트를 비롯해 기내식, 군부대, 카페 등 다양한 곳에 공급되고 있다.

방송에서는 화제의 크림빵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공개됐다. 하나의 거대한 반죽에서 약 1800개의 빵이 만들어지고, 반죽을 먹음직스러운 모양으로 다듬는 성형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이후 빵은 15m 길이의 터널 오븐을 지나 구워지고 냉각실에서 충분히 식힌 뒤 핵심 공정인 크림 주입 단계로 넘어간다.

김영식은 “한국 정서는 손님이 오면 뭐든지 듬뿍 주지 않나. 그것처럼 크림을 아낌없이 꽉 채운 ‘한국형 크림빵’을 만들고 싶었다”며 개발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출시 전에는 직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크림의 변질을 막으려면 냉장 보관이 필요했지만 빵을 차갑게 보관하면 식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랐다. 김영식은 빵이 푸석해지지 않도록 수분을 공급하는 기술을 적용하고, 많은 크림을 넣어도 쉽게 터지지 않도록 고무풍선처럼 늘어나는 반죽을 개발하며 문제를 풀었다.

수돗물로 허기 달랜 14살 소년공

김영식은 구로공단 노동자였던 부모님 밑에서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일 만큼 형편이 어려웠고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날에는 수돗물로 허기를 달랬다. 청소하다 바닥에서 발견한 먼지 묻은 빵 조각을 주워 먹었던 기억도 털어놨다.

중학교 1학년이던 14살부터는 학교 대신 공장에서 일했다. 당시 받은 첫 월급은 3000원이었다.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공부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공부방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아 동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책을 펼쳤고 결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지만 서울 곳곳에 들어서는 아파트를 보면서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됐다.

당시 공무원 월급은 9만 9000원이었다. 김영식은 “공무원 월급 9만 9000원으로 아파트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해 사표를 냈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중동 건설 현장 근로자의 길을 택했다.

출국하던 날 비행기에서는 ‘고향의 봄’이 울려 퍼졌다. 고향을 떠나 낯선 중동으로 향하던 200여 명의 근로자가 노래를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당시 기억도 공개됐다.

사하라 사막에서 보낸 시간은 총 6년이었다. 힘든 해외 근무를 견딘 끝에 당시 아파트 6채 값에 해당하는 돈을 모아 귀국했고, 가장 먼저 평생 달동네에서 살아온 부모님께 아파트를 마련해드렸다.

김영식은 “그 돈으로 평생 달동네에만 살아온 부모님께 아파트를 선물했다”고 말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가난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공장으로 향했던 아들이 오랜 해외 근무 끝에 부모에게 집을 마련해준 이야기에 서장훈도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영업사원에서 빵 회사 사장으로

귀국한 김영식은 일본계 회사에 입사해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영업사원으로 출발한 뒤 빠르게 성장해 임원 자리까지 올랐지만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회사가 식품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하자 김영식은 해당 사업을 직접 인수했다. 우여곡절 끝에 40대 후반 제빵회사 사장이 됐고 이후 사업을 키우며 오늘날 연 매출 1400억 원 규모의 기업을 일궜다.

크림빵의 성공은 예상하지 못한 인연으로도 이어졌다. 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재료인 ‘Y우유’의 매출까지 함께 증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김영식은 해당 우유의 모델인 서장훈에게 “크림빵 모델로 한번 나와달라”고 깜짝 제안했다.

서장훈도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보탰다. 자신의 큰 체격을 활용해 “사이즈를 크게 만들어서 ‘빅 크림빵’으로 출시하면 좋겠다”고 제안하며 김영식의 러브콜에 화답했다.

직원 안전부터 23억 원 식품 기부까지

이날 방송에서는 김영식이 직원들의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공개됐다. 김영식은 “저희 부모님이 구로공단 노동자 출신이시고, 저도 어렸을 때 공장을 다녔다”며 자신과 부모가 직접 노동 현장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실제 공장 곳곳에는 작업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장치가 설치돼 있다. 사람이 위험 구역에 접근하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는 센서를 적용해 끼임 사고를 막도록 했다.

김영식의 나눔은 공장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직접 협회를 설립해 20년 동안 약 23억 원어치의 식품을 기부하며 이웃에게 먹거리를 나눠왔다.

어린 시절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김영식은 이제 자신이 만든 식품으로 다른 사람들의 배고픔을 덜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만들며 오래도록 일하고 싶다”는 소원을 전했다.

방송은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던 14살 소년공이 공무원과 중동 건설 근로자, 영업사원을 거쳐 연 매출 1400억 원 기업을 일구고 식품 기부까지 이어온 시간을 보여줬다. 김영식의 긴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은 무엇일까?

사진 :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