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 22회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 2부 황제의 밀사, 호머 헐버트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 22회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 2부 황제의 밀사, 호머 헐버트
임윤서 기자2026.05.16뉴스나인

5월 17일 방송되는 KBS1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 22회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 2부 황제의 밀사, 호머 헐버트’ 편에서는 20세기 초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 대한제국의 국권을 지키고자 고종 황제의 비밀 특사로 활약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의 행적을 조명한다.

1886년 조선에 교사로 입국한 후 『사민필지』, 『대한제국 멸망사』 등을 집필하고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며 100편의 기고와 1,000회에 달하는 강연으로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헐버트. 그가 명성황후 살해 사건 40일 뒤 권총을 들고 고종이 머무는 건청궁으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을사늑약 직전 미 백악관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면담을 시도한 까닭은 무엇인가? 왜 일본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로 향한 헐버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을까? 시간여행자 지승현과 함께 한-미-일 3국의 기록을 집중 취재하여 역사의 현장을 파헤친다.

하얼빈 의거의 숨은 배후? 안중근의 증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이른바 하얼빈 의거. 그리고 이 사건의 배후로 일본의 용의선상에 오른 것이 호머 헐버트.

헐버트는 1907년 7월 헤이그 밀사 프로젝트 이후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에서 추방된 뒤 1909년 8월 은밀히 입국했고, 그 행적을 일본이 감시하고 있었다.

일본은 안중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헐버트에 관해 계속 캐물었지만, 안중근은 이렇게 말한다.

“헐버트를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으면 안 된다.”

일본의 주권 침탈이 가속화되고 있던 시기, 한국인의 가능성을 먼저 깨닫고, 대한제국에 헌신한 헐버트의 행적을 조명해 본다.

비록 지금은 어둠 속에 있지만
한국인들의 불굴의 의지는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설 힘을 가지고 있고,
머지않아 자유로운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다
-호머 헐버트

교사 헐버트, 조선의 현실에 눈뜨다

미국 명문가에서 태어나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23세의 호머 헐버트는 조선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학교인 육영공원에 교사를 파견해 달라는 고종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인의 가능성과 한글의 우수성을 알아본 헐버트는 최초의 한글 세계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집필하고, 대중의 교육 수준을 올리기 위해 『독립신문』을 제작하는 등 교육 근대화에 힘쓴다.

일본의 침탈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교사 헐버트의 역할도 크게 변화한다. 1895년 명성황후 살해 사건 40여 일 뒤 벌어진 이른바, ‘춘생문 사건’ 당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을 경호하기 위해 헐버트는 권총을 들고 입궐한다.

한국어를 익히며, 한국 문화와 역사를 공부해 온 헐버트와 그를 신뢰한 고종 황제. 대한제국 비운의 황제와 외국인 교사의 우정은 이제 나라의 운명이 걸린 외교전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대한제국의 위기를 알리다, 헐버트가 전달한 고종의 친서 121년 만에 최초 공개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 체결 한 달 전 미국에 보낸 친서 원본이 121년 만에 공개된다. 이 친서는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 30년을 추적한 끝에 미국 의회 도서관 루스벨트 문서함에서 발견한 것으로, 1905년 일본의 주권 침탈에 맞서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때 고종의 친서를 미국에 전달한 이가 바로 헐버트였다. 고종의 친서와 함께 미 의회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헐버트의 영문 번역본도 함께 공개된다.

당시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미 백악관을 방문한 헐버트가 요청한 것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면담. 왜 미국은 그 면담을 끝내 거부했던 것일까.

미국 정부의 외면에 분노한 헐버트는 왜 뉴욕타임스 본사를 찾아갔을까? 대한제국의 운명을 가른 1905년 을사늑약을 둘러싼 치열하고 급박했던 외교 전쟁의 전말이 밝혀진다.

고종 황제 최후의 밀명, 헐버트의 비밀 외교전

1905년 러일전쟁에서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승리하자 대한제국은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다. 고종 황제의 마지막 희망은 제2차 만국평화회의. 1907년 이상설, 이준, 이위종 한국인 특사 3명이 헤이그로 향한다.

이때 고종 황제의 특사증을 받은 제4의 특사가 바로 헐버트다. 그런데 헐버트는 일본의 주요 감시 대상자. 그는 한국인 특사와는 다른 경로를 통해 헤이그로 들어간다.

한국인 특사들은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결국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대한제국이 세계인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만국평화회의보>에 대서특필된다.

누가 한국인 특사의 기자회견을 준비한 것일까. 헐버트는 그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추방된 헐버트가 1909년 가족들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은밀하게 다시 대한제국으로 입국한다. 고종이 남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헐버트가 보관하고 있던 고종의 비자금 관련 서류를 통해 대한제국 황제의 밀사였던 헐버트의 마지막 임무를 추적해 본다.

1907년 6월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시작된 주권 회복 운동,
일본의 조약 불법 강제에 대한 규탄 운동은
결국 우리가 국제적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호머 헐버트의 활약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이태진 /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명예교수

헐버트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완벽하게 알아낸 인물이에요.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고, 한국인은 교육 기회만 있으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이다.”
말하시면서, 우리가 모르는 우리를 일깨워준 분이죠
-김동진 /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헐버트의 행적은 교사로 조선에 들어온 출발점에서 고종의 밀사로 움직인 외교전까지 이어진다. 고종의 친서와 헤이그 특사, 안중근의 증언은 한 외국인이 왜 대한제국의 독립 문제 한가운데 놓였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장면이다. 한-미-일 3국 기록이라는 축은 조선을 사랑한 이방인의 선택을 대한제국 외교전 속에서 다시 보게 한다.

일본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고 끝내 강제 병합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 전 생애에 걸쳐 대한제국의 자주권 확보와 독립에 헌신한 호머 헐버트의 이야기는 5월 17일 일요일 오후 9시 30분 KBS1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 22회 ‘황제의 밀사, 호머 헐버트’ 편에서 방송된다.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