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데이앤나잇 41회 송창식 고교 자퇴 뒤 ‘2년 노숙’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41회 송창식 고교 자퇴 뒤 ‘2년 노숙’

9월 5일에 방송되는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41회에서는 송창식이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2년 동안 노숙 생활을 이어갔던 사연이 공개된다.

정미조 교내에서 키운 가수 꿈

정미조는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68학번으로, 재학 당시부터 노래 실력과 미술 전공 경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화여대에는 재학생의 결혼과 연예 활동을 금지하는 학칙이 있었고, 정미조는 “그래서 외부 활동을 안 하고 교내 활동만 했다”라며 학교 안에서만 무대 경험을 쌓았다고 밝혔다.

외부 방송에 나설 수 없었던 정미조가 노래할 수 있는 곳은 채플과 학교 축제 무대였다. 정식 연예 활동은 하지 못했지만 교내 행사에 꾸준히 서며 가수의 꿈을 이어갔다. 대학 시절에는 미술을 전공하면서도 노래를 놓지 않았고, 졸업 뒤 방송 무대로 향할 준비를 이어갔다.

‘마이 웨이’ 한 곡의 방송사 쟁탈전

1972년 대학을 졸업한 뒤 처음 방송에 출연한 정미조는 ‘마이 웨이(My Way)’ 단 한 곡으로 방송가의 관심을 받았다. 정미조는 “방송에서 ‘마이 웨이(My Way)’ 단 한 곡을 불렀는데, 방송국마다 전화가 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방송사들의 반응은 단순한 출연 요청에 그치지 않았다. 정미조는 “우리 방송사에만 출연해라. 키워주겠다”라는 제안까지 받았다며 여러 방송사가 자신을 잡으려 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한 번의 방송 무대가 여러 곳의 러브콜로 이어지면서 데뷔 초부터 치열한 ‘정미조 쟁탈전’이 벌어진 셈이다.

당시 불렀던 ‘마이 웨이(My Way)’는 이후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제목으로 번안돼 정미조의 전속기념 1집에 수록됐다. 방송에서는 이 음반도 함께 공개되며 1970년대 초 정미조가 가수로 첫발을 내디뎠던 시절을 되짚는다.

정미조는 1970년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170cm의 큰 키와 시원한 이목구비로 ‘최장신 여가수’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신인 시절 방송국 복도에서 앙드레김을 만난 뒤 먼저 그의 옷을 입을 수 있는지 물었고, 이후 앙드레김의 의상을 입고 방송 무대에 서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앙드레김 패션쇼에는 세 차례 모델로 올랐다.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을 두고 한 여성지가 근거 없는 스캔들을 싣자 정미조는 직접 해당 매체를 찾아가 항의했고 결국 사과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오랫동안 보관한 앙드레김 의상 20여 벌을 훗날 모교 이화여대에 기증한 사연도 공개된다.

송창식 예고에서 마주한 좌절

송창식은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에 들어갔지만 입학과 동시에 큰 좌절을 맛봤다고 고백한다. 입학 전까지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컸던 그는 학교에 들어간 뒤 자신보다 일찍부터 체계적으로 음악을 배운 학생들을 접하며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주변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경에서 일찍부터 실력을 쌓은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과 자신을 비교한 송창식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알게 됐다”라고 당시의 충격을 표현했다. 자신감이 무너지면서 학교생활에서도 점점 위축됐다고 돌아봤다.

그 시기의 경험은 송창식의 표정에도 영향을 남겼다. 그는 “지금처럼 웃는 얼굴이 된 데는 그때의 영향이 크다. 웃는 얼굴이 아니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힘든 상황을 견디기 위해 웃는 표정을 지었던 시간이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송창식은 어린 시절부터 안정된 가족 환경과도 거리가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한 뒤 송창식이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집을 떠났다. 이후 할아버지와 삼촌 집을 오가며 더부살이를 했다고 회상했다.

가족과 가까운 유대를 맺을 기회가 적었던 어린 시절은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흔적을 남겼다. 송창식은 지금까지도 사람끼리 애정을 나누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며 마음이 차가운 것은 아니지만 행동이 다소 차갑게 보일 수 있다고 털어놨다.

고교 자퇴 뒤 2년 노숙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한 송창식은 이후 2년 동안 일정한 거처 없이 노숙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곳에서도 잘 수 있다”라고 말할 만큼 잠자리를 가릴 형편이 아니었던 당시를 담담하게 돌아봤다.

먹고사는 문제는 음악과도 직접 연결됐다. 송창식은 “노래하면 밥을 준다는 말에 세시봉에 들어갔다”라며 세시봉과 인연을 맺게 된 출발점을 설명했다. 그에게 세시봉은 이름을 알릴 무대이기 전에 노래를 부르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일정한 잠자리 없이 지낸 2년은 송창식에게 노래와 생계가 분리될 수 없었던 시절로 남았다. 고교 자퇴 뒤 거리에서 버텨야 했던 시간은 그의 음악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송창식이 고교 자퇴 뒤 겪은 2년 노숙의 이야기는 9월 5일 토요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되는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41회에서 공개된다.

사진 :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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