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5일부터 6월 5일까지 평일 밤 12시 5분에 방송되는 EBS1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고백록’ 시리즈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통해 불안과 사랑, 의지와 시간, 안식에 대한 인간 내면의 통찰이 공개된다.
AI 기술로 만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AI 기반 고전 콘텐츠 시리즈의 다섯 번째 고전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다. 《고백록》은 354년에 태어나 430년에 세상을 떠난 아우구스티누스가 397년에서 400년 무렵 남긴 대표적 저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 최고의 수사학자로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던 인물이다. 지독한 공허와 육체적 유혹, 끝없는 지적 방황을 겪은 끝에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낱낱이 고백하며 진정한 자아와 마주했다.
로마 제국 최고의 수사학자였던 한 인간의 고백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었다. 《고백록》은 자기 내면을 깊이 파고든 영혼의 자서전이자 인간이 무엇을 욕망하고 어디에서 안식을 찾는지를 묻는 고전으로 남았다.
편당 15분, 총 10편 구성에는 고전의 의미를 쉽고 체계적으로 전달하려는 기획이 담겼다. 박승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감수에 참여해 학문적 엄정성도 높였다.
1,600년의 자기 고백
지중해 연안의 작은 항구 도시, 북아프리카 히포 레기우스는 《고백록》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395년 이 도시에 새 주교가 된 인물은 한때 로마 제국 최고의 황실 수사학자였고, 9년 동안 마니교에 빠져 헤맸으며, 점성술에 매료됐던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통곡했다. 수많은 죄인의 구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주교가 된 지 몇 년 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속기사를 옆에 두고 한 권의 책을 구술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영혼을 한 줄 한 줄 받아 적게 하는 방식으로 가장 내밀한 기억을 꺼냈다.
십 대 시절 이웃집 배나무를 서리해 돼지에게 던진 일도 고백의 대상이 됐다. 카르타고에서의 방탕, 야망 때문에 15년을 함께한 여인을 떠나보낸 일도 숨기지 않았다.
마니교에 빠져 헤맨 9년, 친구의 죽음에 무너졌던 청년 시절,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통곡 끝에 마주한 회심의 순간까지 이어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과거를 하느님 앞에, 세상 앞에 낱낱이 꺼내놓았다.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일은 사회적 죽음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숨기지 않았고, 자기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집요하게 들여다봤다.
약 3년에 걸쳐 완성된 《고백록》은 현대적 의미의 자서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 사람의 참회 기록을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기도이자 철학적 성찰의 책이 됐다.
현재 다시 읽는 397년작 《고백록》
《고백록》이 세상에 나온 지 1,600여 년이 흘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던진 질문은 지금의 현실 속에서도 날카롭게 되살아난다.
불안과 사랑, 의지와 시간, 안식에 대한 물음은 특정 시대의 종교적 고백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무엇을 원하고, 왜 흔들리며,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내면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한 인간의 부끄러운 치부와 내밀한 감정을 처절하고 솔직하게 드러낸 기록이라는 점에서 《고백록》은 독보적인 힘을 갖는다. 인류 최초로 인간의 내면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영혼을 가장 정직하게 들여다본 고전이라는 점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성공과 성취 뒤에 남는 공허, 사랑의 방향, 지식과 삶의 간극,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의지는 여전히 현재의 문제다.
불안의 시대
“당신께서 저희를 당신을 향하도록 만드셨기에,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불안하나이다”라는 문장은 《고백록》을 여는 핵심 고백으로 제시된다. 이 한 문장은 1,600년이 지난 현대인의 영혼도 그대로 비춘다.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침대에 누우면 공허함이 밀려오는 마음이 있다. 사랑받고 있는데도 외롭고, 바빠질수록 마음속이 텅 비어가는 감각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런 불안을 고쳐야 할 결함으로만 보지 않았다. 영혼이 살아 있다는 증거로 읽어낸 그의 진단은 번아웃과 만성 불안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불안은 현대인의 약점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묻게 만드는 신호가 된다. 《고백록》의 첫 질문은 지금도 마음의 공허를 설명하는 언어로 다시 읽힌다.
사랑의 질서
“우리의 불행은 사랑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옵니다”라는 진단은 《고백록》의 중요한 축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무엇을 사랑하는지보다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더 깊게 묻는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주는 자기 충만함”을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처럼 보이는 관계 안에서도 자기 만족, 인정 욕구, 소유의 마음이 앞설 수 있다는 뜻이다.
도파민 경제와 끝없는 콘텐츠 소비는 사랑의 방향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극과 추천이 마음의 방향을 끌고 가는 장면도 많다.
SNS와 추천 알고리즘이 취향을 설계하는 현실은 사랑의 질서를 더 첨예한 질문으로 만든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지금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관계의 도구화도 같은 문제를 남긴다. 《고백록》은 사랑의 크기보다 사랑의 방향과 질서가 왜 중요한지를 묻는 고전으로 제시된다.
지식과 삶의 분리
“지식은 쌓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이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라는 고백은 정보 과잉 시대의 화두로 이어진다. 많이 아는 것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다.
로마 제국 최고의 수사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직업을 “말의 시장”이라 불렀다. 말과 지식이 진실을 향하기보다 이기기 위한 기술로 쓰일 수 있음을 고백한 표현이다.
“말의 시장”이라는 표현에는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길 것인가만을 가르치고 배웠다는 자기반성이 담겼다. 지식이 삶을 바꾸지 못할 때 지식은 쌓이지만 인간은 그대로 남는다.
무한한 정보와 콘텐츠가 흘러넘치는 현실도 비슷하다. 알고리즘이 지식을 추천하고 콘텐츠가 계속 밀려오지만, 정작 삶의 방향과 태도는 바뀌지 않을 수 있다.
《고백록》은 지식의 양보다 지식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묻는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삶과 분리되지 않는 지식의 힘이 더 중요해진다.
의지의 분열과 시간의 안식
“하나를 선택할 때만이 온전한 의지가 한 길 따라 앞으로 나아갑니다”라는 문장은 의지의 분열을 설명한다.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인간의 오래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다이어트, 금연, 새벽 기상, 디지털 디톡스처럼 결심이 무너지는 일상은 익숙하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미루고,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하는 마음이 여기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무력함의 정체를 “의지의 분열”과 “습관의 사슬”로 풀어냈다. 21세기 자기계발과 행동 변화 담론의 오래된 원전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에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시간론도 《고백록》의 중요한 사유다. 시간은 붙잡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흩어지는 영혼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시간론은 현재를 사는 일이 왜 어려운지를 묻는다. 사방으로 흩어진 영혼을 하나로 모아 영원을 향해 뻗어가는 것이 현재를 사는 길이라는 답도 함께 제시된다.
끝없는 알림과 멀티태스킹에 영혼이 찢긴 현대인에게 이 사유는 가장 오래된 처방처럼 다가온다. 영혼이 안식할 “본연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마지막 질문은 1,600년 뒤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고백록》은 부끄러운 과거를 감춘 성공담이 아니라 자신을 끝까지 들여다본 한 인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힘을 갖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오래된 질문은 AI 강의 형식 안에서 어떤 현재의 언어로 다시 읽힐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강의는 5월 25일부터 6월 5일까지 평일 밤 12시 5분에 방송되는 EBS1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에서 공개된다.
출처 :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