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어묵계의 큰손 전영철의 인생사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어묵계의 큰손 전영철의 인생사

9월 30일에 방송된 EBS1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시즌2 54회에서는 꼬치 어묵 누적 생산량 3억 개 이상, 연 매출 191억 원을 기록한 ‘어묵계의 큰손’ 전영철의 인생사가 공개됐다. 42년 동안 어묵 한길을 걸으며 맛과 품질을 지켜온 과정과 가족을 향한 책임감이 함께 조명됐다.

10만 800번 반죽과 42년 꼬치 달인

이날 방송에서는 대통령 훈장까지 받은 전영철표 어묵의 탄생 과정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전영철의 회사는 30여 종의 어묵을 생산해 온라인 마켓과 치킨 프랜차이즈, 군부대, 휴게소 등 전국 각지에 공급하고 있으며, 방송에서는 반죽부터 튀김과 꼬치 작업까지 실제 생산 과정이 소개됐다.

연육과 각종 부재료를 최적의 비율로 섞은 뒤, 10만 800번 치대 만드는 반죽은 쫀득한 식감과 깊은 감칠맛의 비결로 꼽혔다. 40도를 넘는 열기가 감도는 튀김실을 거쳐 어묵이 완성되는 과정까지 이어지면서 오랜 시간 쌓아온 제조 방식의 무게가 드러났다.

공장에는 반자동과 완전자동 꼬치 기계가 가동되고 있었고, 서장훈과 장예원은 직원들과 함께 직접 꼬치 꽂기에 도전했다. 기계화된 생산라인과 사람 손으로 이어온 숙련이 한 현장 안에서 맞물리는 모습도 함께 공개됐다.

특히 공장의 역사와 함께한 ’42년 꼬치 꽂기 달인’ 전영철 아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수없이 꼬치를 꿰며 굽고 굳은살 투성이가 된 전영철 아내의 손을 본 서장훈은 “농구를 오래 한 사람들 손이 이렇다. 정말 대단하시다”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줬다.

이어 서장훈은 전영철을 향해 “사모님 고생하셨는데 맛있는 것 좀 많이 사주셔라. 더 넓고 편안한 집을 지어주시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전영철은 “아내는 나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라며 묵묵히 한자리를 지켜준 ‘1등 공신’ 아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2700만 원 창업과 생선 함량 70% 원칙

전영철은 가난한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기 위해 17살 때부터 형을 따라 주말마다 오징어잡이 배에 올랐다. 강원도 동해에서 5남 1녀 중 셋째로 자란 그는 성인이 된 뒤 태백 광산촌에서 광부들이 어묵을 즐겨 먹는 모습을 보며 사업 가능성을 찾았다.

1984년에는 매형과 친구에게 2700만 원을 빌려 어묵 공장을 차렸다. 어묵 기술을 익힌 동생도 힘을 보탰고, 피땀 어린 노력 끝에 공장은 2년 만에 자리를 잡으면서 강원도는 물론 제주도와 경남 등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전영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맛’에 대한 고집이었다. 당시 경쟁 업체들이 생선 함량을 40∼50%까지 낮추며 원가 절감에 나섰지만, 전영철은 ‘소비자는 똑똑하다’는 신념 아래 생선 함량 70%를 고수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억대 연 매출을 올리며 지역 판매량 1위, 강원도를 대표하는 어묵으로 우뚝 섰다. 당시 연 매출은 3억∼5억 원 수준까지 올라갔고, 원가를 낮추기보다 제품의 맛을 지키겠다는 선택이 사업을 키우는 기반이 됐다.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결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남아에서 들여온 연육 재료에 문제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전영철은 어묵 3000박스, 2억 원어치를 전량 폐기했다. 납품처에서 이상 징후를 알려왔을 때는 해당 원료가 여러 제품에 섞인 뒤였지만 손실을 감수하고 겨울 판매 물량을 없애는 쪽을 택했다.

이런 철저한 품질 관리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명 온라인 마켓 마○○리 입점으로 이어졌고, 입점과 동시에 큰 호응을 얻으며 현재까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국 유통망을 넓힌 뒤에도 전영철이 앞세운 기준은 판매량보다 소비자가 다시 찾을 수 있는 맛과 품질이었다.

동생 셋을 품은 가장과 나눔 경영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에도 공장 단칸방 살이를 벗어나지 못했던 사연은 뭉클함을 더했다. 사업 초창기에는 공장 안 단칸방을 농짝 하나로 나눠 한쪽에는 직원들이, 다른 한쪽에는 전영철 가족이 생활할 만큼 빠듯한 형편을 견뎌야 했다.

전영철은 아버지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뿔뿔이 흩어져 살던 동생 세 명을 모두 거뒀고, 동생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사업체와 집까지 마련해줬다. 자신은 공장 단칸방에 머물면서도 동생들의 생활 기반을 먼저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1990년 막냇동생까지 장가를 보내고 나서야 오랜 세월 짊어졌던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전영철은 당시를 떠올리며 “소주 한 병을 들고 뒷산에 올라 속 시원하게 소리 내서 울었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편 어려운 시절을 지나 성공을 거머쥔 뒤에도 전영철의 나눔은 계속됐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도 직원들의 급여 90%를 지켜냈고, 회식비를 무제한으로 지원하며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반찬 나눔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전영철의 이야기를 들은 서장훈은 “조금 더 벌기 위해 가격에 품질을 타협했다면 오늘날의 성공은 없었을 것 같다”며 그의 경영 철학에 깊이 공감했다. 17살 오징어잡이 배에서 출발한 삶은 가족과 직원,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선택이 사업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42년 동안 맛과 품질을 놓지 않은 전영철의 선택은 큰 매출보다 어떤 원칙을 지켰는지가 그의 인생사를 설명한다. 2억 원의 손실까지 감수하며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킨 장면 가운데 가장 오래 남은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사진 :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